1994~2022...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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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발행한 『초동회 소식지』 이후, 한국의 퀴어(비연속/연속)간행물의 문장을 수집하고 연결하는 공간입니다. 발견한 문장을 보내주세요.

2000년 8월 26일 비오는 대학로를 가로질러 200여 명의 이반들이 짤막한 거리를 행진할 때도, 그 이듬해 2001년 9월 홍대정문에서 출발한 소규모의 행렬이 홍대 정문 앞을 벗어나지 못한 체 곧바로 유턴을 해야하던 순간에도, 그리고 또 그 이듬해 2002년 월드컵이 막 팡파르를 울리기 시작하던 그때 6월 8일, 이태원에서 제법 퍼레이드를 모양새를 갖추며 행진할 때도 세상 사람들은 놀라고야 말았을 것이다. “아니 우리나라에도 저런 동성연애자들이 행진을 하다니⋯”

—『보릿자루』 42호, 「조선의 호모종로를 주름잡던 날」, 김재원, 2003

“이해가 안되네요, 퍼레이드참여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있고, 선글라스를 낀 나라는 한국 뿐일거라고 생각해요. 퍼레이드는 일종의 커밍아웃으로 통하는데 한국은 아닌가봐요” 38세의 일본인 독립영화 감독 고히치씨의 말이다.

—『보릿자루』 42호, 「조선의 호모종로를 주름잡던 날」, 김재원, 2003

1997년5월 21일로부터 태어난 안전지대는 이제껏 비활동적이고 음성적이던 부산, 경남지방레즈비언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꼭 동성애자가 아니더라도 여성으로 겪는 사회적인 사회적인 부당함 등을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별성정체성을 떠나 이반인(二般人)인 우리가 일반인이라고 하여 배척하지 않으며 다수인 그들 속에서 당당한 인격체로서 모두에게 주어진 평등한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 자신부터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부끄럽지 않은 자신을 바라보아야 되지 않을까.

—『안전지대창간호, 「내는 글⋯.」, 1997

레즈비언 섬을 발견하다. 암흑 같던 어둠을 뛰쳐나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이 자신스스로가 열어가고자 방황해야 했던 수많은 날들⋯ 한국 최초 동성애 전문 잡지 버디세상에 나오면서, 어둠의 빛처럼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문을 두드린 레즈비언 모임 안전지대⋯ 새내기-신입-여러분이 많은 상담과 회원가입과 모임에 대한 문의를 해옵니다. 벅찬 감동과 반가움 이전에 빈 구석을 메워나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찾아나갈 정도로의 모임의 내용과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안전지대』 9호, 「글: 회장 블랙」, 1998

11월 23일,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정기모임이 있는 날. 사람들을 만난다는 설렘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범일동에 위치한 텔레폰이라는 곳의 문을 열었지만, 막상 나를 맞아주는 건 썰렁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룰루랄라~~” 히죽거리며 “송지나의 취재파일”을 봤다. 4명의 여성들이 얼굴을 공개하고 자신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그들이 TV라는 파급효과가 큰 매체에 COMING OUT(커밍아웃-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용기가 필요했을까? 방송이 나간 후 겪었을 부당한 대우와 주위의 시선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한두 명씩 사람들이 들어섰다.

—『같은마음』 7호, 「첫번째 만남」, 낮은 목소리, 1998

이반이어서 외롭고 우울하니까 나는 많은 일을 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폭넓게 알게 해 주었다. 이반이어서 보이지 않게 사랑함으로 아픈 만큼 사람을 이해하고, 상처를 어루만져 줄줄 알게 해주었다. 이반이어서 보도블럭 사이에 핀 꽃을 발로 차지 않고, 한참을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이반이어서 아픔과 슬픔만큼 기쁨이 크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이반이어서 가마타는 즐거움 뒤에 가마 매는 괴로움도 있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반이어서 사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고, 오래오래 보게되면 된다는 믿음을 알게 해주었다. 이반이어서 사랑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하고, 사랑의 힘을 믿게 해주었다. 이반이어서 “인간적이란 말”의 뜻을 알게 해 주어서. 이반이어서, 이반이어서..

—『너와나창간호, 「⚨.이반이라서⋯..」, 하섭님, 1999

인권운동이 무엇이고, 그것이 대체 게이들인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물어보는 사람에게 일일이 대꾸할 필요도 없다. 이태원이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는지, 그들이 발 딛고 춤추고 새벽이 무너지도록 연애하고 있는 그 곳이 어떻게 해서 가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굳이 말하지 말자. 그저 김빠진 맥주 맛처럼 진행되는 느슨한 한동협.

—『너와나창간호, 「혁명의 기억속으로? 너희는 아침의 나라 한동협 1주년 기념식을 아느냐?」 (친구사이 6월 소식지 내용 재수록), 1999

WHY NOT의 회지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회지 발간을 계기로 WHY NOT이 힘들고 외로워하는 사람들의 편안한 휴식처로 더욱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항상 노력하는 WHY NOT의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와이낫창간호, 광주전남153빛동인모임지기 스탤론, 1998

좀 돌리지 말고 물어봤어야 했다. 레즈비언들이 페미니스트들에게 너희는 남자랑 싸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적과의 동침을 할 수 있냐고 물었어야 했고, 페미니스트들은 레즈비언들에게 한 남자도 바꾸지 못하면서 어떻게 너희들의 사랑이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냐고 물었어야 했다.

—『또다른 세상』 5호, 「다이크소녀, 페미니즘을 만나다」, 1997

한국에도 레즈비언이 있어요?’ 8월 9일 ALN(Asian Lesbian Network) conference가 열리는 대만에 도착했을 때 각국에서 온 레즈비언들이 한국에서 왔다는 나를 보고 처음으로 했던 말이다. 이럴 수가. 그러나 사실 그런 의문과 놀람도 무리는 아니다. 그만큼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들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었고 자신을 알리는 목소리 또한 없었으니까. 우리나라에서는 레즈비언이 무엇인지, 동성애가 무엇인지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아마 많을 것이다.

—『끼리끼리소식지』 1995년 11월호, 「​​우리의 힘, ALN참가기」, 전해성, 1995

동성애 문제’만 가지고 ‘인권! 인권!’ 하기에는 너무 이기적이고 편협한 문제 접근이란 생각이 든다. 동성애 사회가 모든 차별받는 집단들의 문제 해결에 같이 뛰어들어야 ‘동성애 인권문제’도, ‘진보적 노선을 걷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이성애 관점만큼은 포기하질 못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같은 인권 문제로 비로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동성애자들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사이2000년 6월호, 「동성애자들이 ‘안티미스코리아’에 열광해야만 하는 이유」, 정기상, 2000

故 육우당 유서에서. 이 세상은 아비규환인 것 같습니다. ,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 이 여섯 가지가 제 유일한 친구입니다. 그래서 육우당(六友堂)이죠. 후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의문입니다.

—『LGBT PAPER2003년 6-7월호, 앞표지, 2003

동성애자 인권연대를 알게 된 건 친구의 권유에서였다. 이미 동인련과 친분이 있던 친구는 급하게 포스터를 만들 사람이 필요하다고 연락을 했고, 동성애자 인권연대란 단체가 있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던 나는 조심스레 승낙을 하고 캠프 포스터를 만들면서 동성애자 인권연대와의 인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 지금 동인련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의 작은 관심을 필요로 하고 있다.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이는가⋯

—『LGBT PAPER2003년 10-11월호, 「연재, 인권운동과 나」, 강태성, 2003

주변 장애인 분들에게 커밍아웃한 적은 없으신가요? 커밍아웃을 한 친구가 있었는데 못 받아들이더라고. 비장애인들은 대부분 “이해는 하지만 저는 그쪽이 아니에요”라고 쉽게 얘기하고 헤어질 수 있지만 장애인들은 안 그래. 좁은 활동공간 속에서 계속 만나야만 하니까. 그 사람커밍아웃 이후론 계속 날 거부하고 딴지를 걸었어.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좀 괜찮아졌지만, 나름대로 실험한다고 한건데 위기가 되어버렸지. 그 이후에는 커밍아웃을 안 했어⋯ 다시는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

—『중대이반신문창간호, 「잔디형은 중증장애를 지닌 동성애자입니다」, 신이, 2005

95년 초였을 것이다. 우연히 알게 된 하이텔 중앙 대화실의 동성애자 대화방⋯ 난 그곳을 통해 소외 데뷔(?)라는 것을 하게 됐다. 처음 그곳을 드나들 때는 어찌나 두려웠던지⋯ ‘동성애자 대화방에 들어가 있는 것을 혹시 아는 사람이 보면 어떡하나?’하는 걱정부터 시작해서, 한번 만나자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난 후다닥 대화방을 도망쳐 나와야 했고, 그들만의 은어를 들을 때마다 난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을 헤매야 했다. 그렇듯 나의 시작은 두려움과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그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으니⋯

—『또하나의 사랑』 10호, 「뜨겁고 강렬한 또하나의 사랑을 꿈꾸며⋯」, 김현구, 1998

예전부터 종로 쪽에서부터 쓰이는 속어로 남성 역의 사람들 땟자, 여성 역의 사람을 맞자, 그리고 양 역할이 가능한 사람을 전차라 합니다. 하지만 요즘 많은 게이들에겐 그리 특별한 구분이 없고 이 용어는 잘 쓰이지 않습니다.

—『또하나의 사랑』 8호, 「게이가 알고싶은 레즈비언, 레즈비언이 알고 싶은 게이」, 1997

또사모에서 게이들을 알게되면서 느낀 것이 게이들이 보통의 남자들보다 훨씬 낫다는 점이었다. 일반 남자들같은 남성권위주의적인 사고가 없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쉽게 생각하고 즐긴다기 보다는 자포자기적 인생을 산다거나⋯ 성욕을 콘트롤 할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또하나의 사랑』 8호, 「게이가 알고싶은 레즈비언, 레즈비언이 알고싶은 게이」, 1997

홍콩에 가보니까 gay bar가 많더라고요, 홍콩만 해도 굉장히 자유로운데⋯!!!~~~ 나같이 김종서처럼 머리 긴 남자가 지나가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사람이 거리에 하나도 없고⋯

—『열린마음』 2호, 「벽을 허물고」, 1996

저는 이성애자입니다. 하지만 동성애를 비난하거나 멸시하는 행위가 옳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흐음⋯ 저 나름대로 동성애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 저런 자료를 가지고 공부해오길 이제 석 달이 되네요. 그렇다고 무슨 심리학이나 사회학을 전공하는 것은 아니고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건지나 알고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이런저런 책들을 그냥 들여다보는 사람입니다. 동성애 소식지를 발간하신다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드린 이유는 그 소식지를 저도 받아볼 수가 있을까해서 입니다.

—『열린마음』 2호, 「벽을 허물고」, 1996

나의 경우엔 커밍아웃에 그리 거창한 목적이 있지 않다. 그저, 주위의 사람들과 나의 더 많은 것을 공유했으면, 그래서 그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아줬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랄까.

—『QueerFly』 6호, 「커밍아웃」, 2000년대

SNS는 즉각적인 사람들의 반응과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서비스이지만, 정보의 중요성에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면 밀려서 사라지고 마는 글의 휘발성은 치명적인 단점일 수밖에 없다. 필자는 그러한 SNS의 한계를 인쇄매체로 극복해보고자 했다. 시간에 흘려보내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동아리 회원들의 글을 간행물에 갈무리해 보는 것이다. 쉽게 잊혀지지 않도록, 한 명의 독자라도 더 볼 수 있도록.

—『』, 「SNS 갈무리」, 닭살튀김, 2015

사람들이 놀러 다니는 것도 좋지만, 인권 활동이라든지 이런 거에도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면 좋을 것 같아요. 대만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되었을 때 다 같이 으쌰으쌰 하는 모습을 보며 감명 깊었는데 우리는 하는 사람만 하고 안 하는 사람은 계속 안 하는 것 같아서⋯ 지금도 종로가 우리들의 큰집 같은 공간인데 점점 없어지도 있으니까 뭐가 되었든 다 같이 힘을 모으거나 하는 게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플래그페이퍼창간호, 「보리」, 2018

그런데 어플 좀 싫어요. 게이 커뮤니티의 피라미드 구조를 심하게 만들었잖아요. 외모 지상주의가 훨씬 심해졌죠. 옛날에는 외모가 좀 별로여도 “그래도 세 번은 봐야지, 또 다른 매력이 있을 수도 있어.” 이랬는데, 지금은 사진 교환하고 아닌 것 같으면 안 만나. 왜냐, 내가 또 만날 사람이 줄 서 있거든. 어플에 프로필 사진 수백 개가 쫙 리스트로 보이잖아요.

—『보릿자루 산책하기창간호, 「D」, 2022

그러니까 저는 페미니스트거든요. 그리고 게이는 당연히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단톡방이나 다른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은 안 그런 친구들이 많은 거예요. 자기는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 완전 무관심하고, 그런 것들이 어떻게 나의 권리나 인권과도 연결이 되어 있는지 잘 이해를 못 하고요. (⋯) 그리고 동갑 단톡방이나 같은 직종 단톡방 사람들끼리 만나도 우리는 같은 인생을 사는 동료들이라는 느낌보다는, 만 마시고 플러팅의 목적만 있고⋯ 이런 것들이 부정적으로 느껴질 때 지보이스를 나와봤어요.

—『보릿자루 산책하기창간호, 「Y」,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