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2022...
자유
무작위 순서

1994년 발행한 『초동회 소식지』 이후, 한국의 퀴어(비연속/연속)간행물의 문장을 수집하고 연결하는 공간입니다. 발견한 문장을 보내주세요.

이태원 게이바의 한밤의 스트립쇼(?)는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이 곳 이태원만이 지닌 자유분방함을 느끼게 하는 광경이다. 사진 촬영을 한 곳은 이태원의 게이클럽 ‘와이낫’이다. 문밖에서 봐서는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지만.. 문을 열면 이 곳은 춤의 도가니다. 평일에는 한산하던 이곳이 주말만 되면 뒤집어(?)진다.

—『보릿자루』 33호, 「여기가 어디??」, 2002

애널섹스는 그 자체로서도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걸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그 성행동을 행하는 파트너들끼리 알아서 결정할 문제이다. 설령 그들이 엉덩이를 후려갈기고 오르가즘을 얻든, 아니면 피를 봐야 오르가즘에 도달하든 그건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애널섹스를 그렇게 파트너들끼리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자유로의 합의 사항이라 치부하고 넘겨버리는 건 어리석은 일인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가 큰 쪽은 애널섹스를 파문하는 게이들이었던 듯하다.

—『같은마음』 5호, 「내가 게이들에게서 증오하는 열 가지의 것들 2」, 서동진, 1997

보도 위를 혼자 걷는 남자가 낯설게 보일 만큼, 연인끼리의 팔짱끼기와 마주잡은 손들이 주저없이 자연스러운 그린위치빌리지. 내내 질투로 이글거리던 한국 토종 게이의 토라진 눈가에도 슬며시, 봄날의 기운처럼 웃음이 번져나오게 하는 게이들의 활기찬 오후 산책⋯. 그래도 그들은 1970년대 바로 그곳에서, 그리고 99년 호모포비아에게 희생당한 어느 게이의 장례식에도 두 주먹 불끈 쥔 채 자유를 위해 싸워야 했다. 그들의 자유자유를 위한 그들의 투쟁에서 비롯되었다는 너무도 뻔한 이치를, 눈감을 수 없이 자명한 그 깨달음을 그린위치 빌리지의 산책길에서 배운다.

—『친구사이1999년 5월호, 「이희일의 뉴욕기행」, 이송희일, 1999

홍콩에 가보니까 gay bar가 많더라고요, 홍콩만 해도 굉장히 자유로운데⋯!!!~~~ 나같이 김종서처럼 머리 긴 남자가 지나가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사람이 거리에 하나도 없고⋯

—『열린마음』 2호, 「벽을 허물고」,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