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2022...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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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발행한 『초동회 소식지』 이후, 한국의 퀴어(비연속/연속)간행물의 문장을 수집하고 연결하는 공간입니다. 발견한 문장을 보내주세요.

솔직히 창간호 모델로 기용하면서 내심 망설였다. 소위 역사적인 우리나라 최초의 동성애 전문지의 첫 호에 양성애자를 쓴다는 것에 독자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그러나 그녀가 양성애자라고 해서 레즈비언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역시 어려웠다. 그녀가 나와 달리 남자에게도 연정을 느낀다지만 나와 똑같이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누구보다도 열심이다. 그녀의 양성애 성향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녀를 레즈비언이라는 테두리에서 제외시켜야 할 아무런 이유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버디』 12호, 「내가 바이라는데 왜 놀라지?」, 한채윤, 1999

2000년 8월 26일 비오는 대학로를 가로질러 200여 명의 이반들이 짤막한 거리를 행진할 때도, 그 이듬해 2001년 9월 홍대정문에서 출발한 소규모의 행렬이 홍대 정문 앞을 벗어나지 못한 체 곧바로 유턴을 해야하던 순간에도, 그리고 또 그 이듬해 2002년 월드컵이 막 팡파르를 울리기 시작하던 그때 6월 8일, 이태원에서 제법 퍼레이드를 모양새를 갖추며 행진할 때도 세상 사람들은 놀라고야 말았을 것이다. “아니 우리나라에도 저런 동성연애자들이 행진을 하다니⋯”

—『보릿자루』 42호, 「조선의 호모종로를 주름잡던 날」, 김재원, 2003

한국에도 레즈비언이 있어요?’ 8월 9일 ALN(Asian Lesbian Network) conference가 열리는 대만에 도착했을 때 각국에서 온 레즈비언들이 한국에서 왔다는 나를 보고 처음으로 했던 말이다. 이럴 수가. 그러나 사실 그런 의문과 놀람도 무리는 아니다. 그만큼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들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었고 자신을 알리는 목소리 또한 없었으니까. 우리나라에서는 레즈비언이 무엇인지, 동성애가 무엇인지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아마 많을 것이다.

—『끼리끼리소식지』 1995년 11월호, 「​​우리의 힘, ALN참가기」, 전해성, 1995

또사모 엠티때 모래시계 회원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이 가려진 얼굴 속에서 우리나라 동성애자들의 인권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얼굴의 모자이크를 지울 수 있는날,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노력할 것입니다.

—『또하나의 사랑』 8호, 「표지설명」,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