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2022...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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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발행한 『초동회 소식지』 이후, 한국의 퀴어(비연속/연속)간행물의 문장을 수집하고 연결하는 공간입니다. 발견한 문장을 보내주세요.

결국 포즈와 의상을 조정하기 위해 그녀를 불렀다. 근심스런 우리들의 질문과는 달리 역시 그녀의 판단은 현실적이었다. “나 지금 갈아입을 옷도 없어. 어차피 〈버디〉도 모델료 줄 없잖아. 의상 살 도 없는데 그냥 벗고 하자. 웃옷만 벗으면 되니까. 창간호는 강한 인상을 줘야 하잖아?” (쿵~~ 모델옷 벗기기가 어렵다고 누가 그랬던가? 가난이 때론 좋은 효과를 줄 때도 있군.)

—『버디』 12호, 「포즈 정하기 – 의상 살 도 없는데 그냥 벗고 하자!」, 1999

솔직히 창간호 모델로 기용하면서 내심 망설였다. 소위 역사적인 우리나라 최초의 동성애 전문지의 첫 호에 양성애자를 쓴다는 것에 독자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그러나 그녀가 양성애자라고 해서 레즈비언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역시 어려웠다. 그녀가 나와 달리 남자에게도 연정을 느낀다지만 나와 똑같이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누구보다도 열심이다. 그녀의 양성애 성향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녀를 레즈비언이라는 테두리에서 제외시켜야 할 아무런 이유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버디』 12호, 「내가 바이라는데 왜 놀라지?」, 한채윤, 1999

“그래. 나도 분명 가 있어 화려함. 황홀함을 구하는 가”

—『한울타리』 6호, 뒤표지, 1999

난 아무것도 바라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아주 가끔씩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날 위로하려 들거나 감싸 안으려 들때까지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내 곁에서 조용히 두 손으로 감긴 내 두 눈을 쓰다듬어올려주는 손이 있습니다. 한울타리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의 손길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는 작은 바램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울타리』 6호, 뒤표지, 1999

이반이어서 외롭고 우울하니까 나는 많은 일을 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폭넓게 알게 해 주었다. 이반이어서 보이지 않게 사랑함으로 아픈 만큼 사람을 이해하고, 상처를 어루만져 줄줄 알게 해주었다. 이반이어서 보도블럭 사이에 핀 꽃을 발로 차지 않고, 한참을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이반이어서 아픔과 슬픔만큼 기쁨이 크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이반이어서 가마타는 즐거움 뒤에 가마 매는 괴로움도 있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반이어서 사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고, 오래오래 보게되면 된다는 믿음을 알게 해주었다. 이반이어서 사랑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하고, 사랑의 힘을 믿게 해주었다. 이반이어서 “인간적이란 말”의 뜻을 알게 해 주어서. 이반이어서, 이반이어서..

—『너와나창간호, 「⚨.이반이라서⋯..」, 하섭님, 1999

음⋯. 이반 세계를 알고 몇 번 이태원을 다녀왔지만 사실, 아직도 그곳에 대해 뭐라고 딱히 하고 싶은 말은 없다. 갈 때마다 이태원이 내게 주는 느낌은 달랐다. 처음엔 나와는 너무 동떨어진 세계 같은 느낌이 들었고 다음엔 차차 호기심 어린 곳이 되었고, 때때론 이반세계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 같은 회의를 들게 하였고, 어쨌든 지금은 심각하게 생각 않기로 했다. 일반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대로 떠들고, 마시고 도 부려볼 수 있는 장소가 내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와나창간호, 「필이가 이태원에 간 까닭은?」, 유필, 1999

인권운동이 무엇이고, 그것이 대체 게이들인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물어보는 사람에게 일일이 대꾸할 필요도 없다. 이태원이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는지, 그들이 발 딛고 춤추고 새벽이 무너지도록 연애하고 있는 그 곳이 어떻게 해서 가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굳이 말하지 말자. 그저 김빠진 맥주 맛처럼 진행되는 느슨한 한동협.

—『너와나창간호, 「혁명의 기억속으로? 너희는 아침의 나라 한동협 1주년 기념식을 아느냐?」 (친구사이 6월 소식지 내용 재수록), 1999

동성애 공포증, 이성애 주의, 인종차별, 여성차별, 가부장제, 순종, 강제된 이성애, 성차별주의, 문화적 식민지, 겁, 편견, 정형화, 고정된 성 역할, 침묵, 지움, 미움, 불신, 나이주의, 마녀사냥, 사회적 억압, 자본주의. 이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 왔고, 앞으로 살아갈 세상 역시 우리가 만들어 나갈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또다른 세상』 7호, 뒤표지, 1999

보도 위를 혼자 걷는 남자가 낯설게 보일 만큼, 연인끼리의 팔짱끼기와 마주잡은 손들이 주저없이 자연스러운 그린위치빌리지. 내내 질투로 이글거리던 한국 토종 게이의 토라진 눈가에도 슬며시, 봄날의 기운처럼 웃음이 번져나오게 하는 게이들의 활기찬 오후 산책⋯. 그래도 그들은 1970년대 바로 그곳에서, 그리고 99년 호모포비아에게 희생당한 어느 게이의 장례식에도 두 주먹 불끈 쥔 채 자유를 위해 싸워야 했다. 그들의 자유자유를 위한 그들의 투쟁에서 비롯되었다는 너무도 뻔한 이치를, 눈감을 수 없이 자명한 그 깨달음을 그린위치 빌리지의 산책길에서 배운다.

—『친구사이1999년 5월호, 「이희일의 뉴욕기행」, 이송희일, 1999

친구사이 후원업소를 모집합니다. 친구사이동성애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가 있어야 존속할 수 있는 인권운동 단체입니다. 업소 여러분들의 성원은, 우리 동성애자들의 떳떳한 과 자긍심을 길러내는데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친구사이1999년 5월호, 「친구사이후원업소를 모집합니다」,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