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2022...
동성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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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발행한 『초동회 소식지』 이후, 한국의 퀴어(비연속/연속)간행물의 문장을 수집하고 연결하는 공간입니다. 발견한 문장을 보내주세요.

솔직히 창간호 모델로 기용하면서 내심 망설였다. 소위 역사적인 우리나라 최초의 동성애 전문지의 첫 호에 양성애자를 쓴다는 것에 독자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그러나 그녀가 양성애자라고 해서 레즈비언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역시 어려웠다. 그녀가 나와 달리 남자에게도 연정을 느낀다지만 나와 똑같이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누구보다도 열심이다. 그녀의 양성애 성향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녀를 레즈비언이라는 테두리에서 제외시켜야 할 아무런 이유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버디』 12호, 「내가 바이라는데 왜 놀라지?」, 한채윤, 1999

1997년5월 21일로부터 태어난 안전지대는 이제껏 비활동적이고 음성적이던 부산, 경남지방레즈비언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꼭 동성애자가 아니더라도 여성으로 겪는 사회적인 사회적인 부당함 등을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별성정체성을 떠나 이반인(二般人)인 우리가 일반인이라고 하여 배척하지 않으며 다수인 그들 속에서 당당한 인격체로서 모두에게 주어진 평등한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 자신부터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부끄럽지 않은 자신을 바라보아야 되지 않을까.

—『안전지대창간호, 「내는 글⋯.」, 1997

대경회’가 1년의 역사를 갖게 되고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은 한국 동성애 역사 발전에 큰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 중심의 동성애 문화에 목말라했던 지방동성애자들도 이제는 보수적인 지방색을 이기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것말이죠. ‘대경회’를 선두로 다른 많은 지방에서도 모임들이 만들어지고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운 일을 시작한 ‘대경회’회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욱 많은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레즈비언들도 ‘대경회’를 위해 큰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고요. 저희 ‘끼리끼리’와도 긴밀한 교류가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누리1』, 「각 단체장 축하메시지」, 한국 여성동성애자 인권운동 모임끼리끼리’회장 전해성, 1997

진심으로 대경회 모임 결성 1주년축하하며 한없는 애정과 신뢰를 보냅니다. 어떠한 의미에서건 동성애자들이 연결망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서울에 편중된 현재의 동성애자 문화에서 지방모임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더욱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모든 동성애자들을 위해 옳다고 생각되는 방향을 모색하고 그에 따라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할 것을 바랍니다. 아울러 동성애자들의 전국적인 연결망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누리1』, 「각 단체장 축하메시지」, 서울시립대학교 동성애자 모임레스보스’대표 양지용, 1997

안녕하십니까? ‘컴투게더’대표 한종우입니다. 대구경북지역 동성애자 모임인 ‘대경회’의 1주기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해방의 그날, 여러분들과 함께 둘러앉아 오늘의 어려움을 회상하며 웃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우리누리1』, 「각 단체장 축하메시지」, 연세대학교 동성애자 모임컴투게더’대표 한종우, 1997

대구경북지역 동성애자 모임인 ‘대경회’의 1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또하나의 사랑1주년 기념 모임에서 회장님을 통해 ‘대경회’가 지방을 중심으로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펴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동성애자 단체들이 수도권에 집중되어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대경회'의 그와 같은 활동은 매우 고무적 활동이라 생각됩니다. 아직까지 ‘대경회’와 ‘또하나의 사랑’사이의 눈에 뛰는 교류는 없었지만 앞으로 우호적인 동반자로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아무쪼록 1주년을 맞이한 ‘대경회’가 지방에 거주하는 많은 동성애자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해서 지방의 중추적인 모임으로 계속 발전해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대경회1주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우리누리1』, 「각 단체장 축하메시지」, 하이텔 동성애자모임또하나의 사랑’ 시샵 저스티노, 1997

잘 키운 동성애자 하나 열 이성애자 안 부럽다!

—『다이크』 3호, 「동인련 내부광고」, 1998

친구사이 후원업소를 모집합니다. 친구사이동성애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가 있어야 존속할 수 있는 인권운동 단체입니다. 업소 여러분들의 성원은, 우리 동성애자들의 떳떳한 과 자긍심을 길러내는데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친구사이1999년 5월호, 「친구사이후원업소를 모집합니다」, 1999

날씬한 몸매와 해맑은 웃음을 가진 나우누리 동성애자 모임 ‘레인보우’의 모임지기 ‘참된세상’님은 세 모임모임지기 중 가장 나이가 젊었다. 온라인상이었지만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셨고 추가 인터뷰까지 요청할 정도로 적극적이셨던 모임지기의 모습에 가장 늦게 출발하고서도 결코 다른 모임에 뒤지지 않는 활동력을 갖춘 레인보우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천리안의 동성애자 인권모임모임지기인 ‘길벗’님은 비교적 오랫동안 천리안 모임방에서 벌인 활발한 활동과 수려한 글솜씨를 인정받아 최근 80명이 넘는 인원이 모인 정기모임에서 3대 대표 시삽으로 뽑힌 분이다. 차분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일을 진행시켜 급기야는 큰 사고(?)를 치고야 마는 추진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이텔 모임지기인 오현주님은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분답게 오프라인상에서의 인터뷰를 먼저 제안해왔다. 오현주님과의 만남은 후텁지근한 날의 불쾌함을 씻어줄 시원스러우면서도 강렬한 소낙비와도 같았다.

—『친구사이』 12호, 「세가지색깔, 하나의 목소리_통신3사 시삽을 만나서」, 연도미상

1997년, 한국 동성애 인권운동역사가 바뀐다. 친구사이사무실을 이전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친구사이의 숙원사업이던 사무실 이전이 드디어 여러 단체와 고마우신 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지원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국 남성 동성애자인권 신장을 위하여 더욱 전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도움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친구사이』 14호, 뒤표지, 1997

한: 오늘의 집회는 내 역사적 기록으로 남을 것 같다. 훈 : 쌍용자동차 노조의 노동자가 ‘동성애자 연대투쟁, 노동악법 철폐하자’는 구호를 외쳐주었다. 정말 용기가 솟았다. 석 : 극장에서 소식지 돌릴 때보다 반응이 좋았다. 전경 방패에 붙어있던 핑크 트라이앵글이 인상적이었다. 순 : 집회는 난생처음이고, 레즈비언으로서 나와야 한다는 사명감에 나왔다. 너무 무서웠지만 앞으로도 계속 참여하고 싶다. 안 : 우리만 나설 게 아니라 동성애자 내부로 확산시켜야 할 것 같다. 순 : 투쟁은 축제이다. 신나게 웃고 떠들며 투쟁한 것이 자랑스럽다.

—『친구사이』 14호, 「무지개 퍼레이드 후기」, 1997

동성애 문제’만 가지고 ‘인권! 인권!’ 하기에는 너무 이기적이고 편협한 문제 접근이란 생각이 든다. 동성애 사회가 모든 차별받는 집단들의 문제 해결에 같이 뛰어들어야 ‘동성애 인권문제’도, ‘진보적 노선을 걷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이성애 관점만큼은 포기하질 못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같은 인권 문제로 비로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동성애자들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사이2000년 6월호, 「동성애자들이 ‘안티미스코리아’에 열광해야만 하는 이유」, 정기상, 2000

주변 장애인 분들에게 커밍아웃한 적은 없으신가요? 커밍아웃을 한 친구가 있었는데 못 받아들이더라고. 비장애인들은 대부분 “이해는 하지만 저는 그쪽이 아니에요”라고 쉽게 얘기하고 헤어질 수 있지만 장애인들은 안 그래. 좁은 활동공간 속에서 계속 만나야만 하니까. 그 사람커밍아웃 이후론 계속 날 거부하고 딴지를 걸었어.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좀 괜찮아졌지만, 나름대로 실험한다고 한건데 위기가 되어버렸지. 그 이후에는 커밍아웃을 안 했어⋯ 다시는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

—『중대이반신문창간호, 「잔디형은 중증장애를 지닌 동성애자입니다」, 신이, 2005

현재 서울지역 대학 동성애자 인권 모임은 저희 모임과 서울대 〈마음001〉, 연대 〈컴투게더〉, 이렇게 세 모임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겠지요. 격주의 연합모임을 통해 타대생들과의 만남의 자리도 마련됩니다. 어두운 혼자만의 밀실에서 고민하느니 과감하게 맞부딪혀보는 것이 지혜로운 인 것 같습니다. 저희는 동성애자 여러분을 어제나 열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창간호,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람’에 대해 말하라면..」, 1996

#힘망찬 소식 하나.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각자의 목소리를 담았던 동성애자 단체들이 드디어 연대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남성 동성애자 인권모임인 ‘친구사이’, 여성 동성애자 모임끼리끼리’, 그리고 새로운 동성애 문화를 열어가는 ‘버디’ 등 전국 27개 동성애 단체들이 5월 31일 세종대에 모여 ‘한국 동성애자 협의회’ (가칭)을 결성하였습니다. 아직 정확한 활동과 모임의 명칭이 결정되지 않았지만 전국동성애자단체들의 대표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얼굴을 확인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문제점과 동성애자 인권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박수를⋯

—『퀴어씨네뉴스』 2호, 「HOMO OFFICE」, 1998

제 1회 서울퀴어영화제 사무국은 1997년 5월 ‘끼리끼리’ 운영위원회에 참가하여 서울퀴어영화제의 그간의 준비사항과 의미, 취지 등을 자세히 알리고 여성 동성애자 모임인 ‘끼리끼리’와 함께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전해성 회장님 이하 끼리끼리 운영진이 참가한 운영위원회에서는 저희 서울퀴어영화제 사무국의 이러한 의지를 받아들이고 서울퀴어영화제에 ‘끼리끼리’가 가능한 모든 도움과 동시에 함께 연대하기로 했습니다.

—『팩토리뉴스창간호, 「끼리끼리함께」, 1997

95년 초였을 것이다. 우연히 알게 된 하이텔 중앙 대화실의 동성애자 대화방⋯ 난 그곳을 통해 소외 데뷔(?)라는 것을 하게 됐다. 처음 그곳을 드나들 때는 어찌나 두려웠던지⋯ ‘동성애자 대화방에 들어가 있는 것을 혹시 아는 사람이 보면 어떡하나?’하는 걱정부터 시작해서, 한번 만나자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난 후다닥 대화방을 도망쳐 나와야 했고, 그들만의 은어를 들을 때마다 난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을 헤매야 했다. 그렇듯 나의 시작은 두려움과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그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으니⋯

—『또하나의 사랑』 10호, 「뜨겁고 강렬한 또하나의 사랑을 꿈꾸며⋯」, 김현구, 1998

또사모 엠티때 모래시계 회원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이 가려진 얼굴 속에서 우리나라 동성애자들의 인권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얼굴의 모자이크를 지울 수 있는날,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노력할 것입니다.

—『또하나의 사랑』 8호, 「표지설명」, 1997

그들은 마치 메갈이 성소수자나 성 노동자 혐오집단인 양, 부유한 게이가 게토화된 인종차별이나 가난한 이성애자의 원흉인 양 말하며 계급젠더섹슈얼리티라는 복합적인 제도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메갈이나 게이 커뮤니티에 전가한다. 또한 이들은 여성이나 동성애자경험하는 억압이 서로 교차한다는 사실은 은폐한다.

퀴어인문잡지 『삐라』 3호 ‘길티 플레저’, 「내가 남혐 걸린 게이다 이기야!: ‘혐오세력 메갈 vs. 한남충 게이’라는 혐오의 구도를 넘어서」, 유정민석, 2016

동성애자 관련 기사를 보면 악플이 엄청 많은데 혼자였다면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그런 걸 친구들이나 같은 게이끼리는 웃으면서 넘길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공연을 해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보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뭔가를 찾게 돼요. 뒤집어지게 재미있는 공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게이 인권도움이 되는 게 뭘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걸 고민하게 돼요.

—『플래그페이퍼창간호, 「앤초비」, 2017